오랜만에 재미난 책을 읽었다. <염소가 된 인간>으로 번역된 토머스 트웨이츠라는 영국 출신 디자이너가 쓴 GoatMan이란 책이다. 문제의식의 출발은 이러하다. 사회적 인정도 어느 정도 받아보았고, 물질적인 부족함도 그다지 크지 않은 저자는 그럼에도 인간으로서 존재론적 고통을 느낀다. 남들은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나 외따로 공원에서 커피나 마시며 반려견의 시중을 드는 자신을 반추하며 드는 막막함… 인간은 본질적으로 괴로울 수 밖에 없는가, 고민도 생각도 없는 동물이 된다면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해 보고자 저자 본인이 염소가 되려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영혼, 마음, 몸, 내장 등 염소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며 공학적 도움을 빌어 염소와 유사한 네발구조의 반추형 인간이 되어 알프스를 넘는다는 원대(?)한 프로젝트. 누가 들어도 황당무계한 이러한 문제의식은 게놈 프로젝트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웰컴 트러스트의 지원까지 받는다.
힘들고 어렵게 알프스를 넘으며 끝맺는 책을 두고 자칫 용두사미라는 비난을 할 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저자의 창의적 문제의식에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지점을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느냐에 두고 있었지만 유명한 제인 구달의 침팬지 연구가 입증했듯이 동물 역시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는 반론을 이 책 역시 인용한다. 오히려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지점은 토마스 서든도프를 인용하여 저자가 제시한 두가지다. 하나, 상상적 시나리오를 구축하는 능력과, 둘, 언어를 통해 관계를 맺고자 하는 충동.
특히 저자는 첫 번째 차이점에 주목한다–즉 동물들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점. 과거의 기억만이 있고 그래서 그 기억을 바탕으로 현재를 생각할 뿐 인간처럼 ‘만일, 만약에’라는 상상적 질문을 던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존재론적 고민은 미래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생겨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만일 내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만약에 내가 테러리스트의 습격을 받는 다면, 혹시 내가 회사로부터 해고가 된다면 등등.
맞다. 물론 모든 미래가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고 문제해결의 가능성이 확보된 다면야 걱정이 없겠지만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항상 ‘상상’하면서 살 수 밖에 없고 고통의 출발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자욱한 절벽길을 달리는 것만 같은 자신을 자각하면서 부터 시작된다. 상상이 주는 고통. 항상 진취적으로 미화되는 상상이 이런 맹점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는 쉽사리 생각하지 않는다. 제인 구달의 침팬지 연구가 도구적 인간의 관점을 무력화 시켰듯이 혹여라도 어떤 과학자가 동물도 상상을 한다는 연구를 제시하면 그래서 그들도 고통을 느끼곤 한다는 사실을 입증이라도 한다면 그제서야 존재론적 고통은 모든 생명체가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 조차도 상상인데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을 보면 결국은 어떻게 상상하느냐에 달려있겠지 하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