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시키는 행동

아마 나만큼 언론에 비판적인 언론학자는 없었을 것이다. 4년전에 나는 언론학자의 길을 걷어찼고 지금 IT 사업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학계에 있을 때 나는 언론의 부도덕한 면을 많이 꼬집곤 했다. 아마도 겉으로는 정의를 부르짖으며 생활속에서는 다소 위선의 모습을 보이는 몇 몇 언론인들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을 거다. 이번 조 국 사태를 겪으며 나의 언론관에 변화가 왔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글을 쓴다.

하긴 한창 비판적인 때에도 희망은 있었다. 교수로 있을 때 자주 언론인들을 만나곤 했는데 간부급 언론인들이 하던 말이 있다. 요즘 시대에는 말단 기자들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보도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말이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기자들이 회사가 시키는 대로 보도를 하고는 했지만 시대가 변하여서 이제는 젊은 기자들이 그들의 시각과 관점으로 고집있게 기사를 쓴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하는 의심이 마음 한 켠에 있었던 기억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요즈음 나는 하루에도 몇 번 ‘그래도 우리 언론이 죽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특정 방향으로 논조가 정해진 언론사에서 조차 일선의 기자들은 공정과 정의를 짓밟고 있는 정치인들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선택의 기로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나의 마음에게 묻는 습관이 생겼다. 남에게 보여주기식 행동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기적인 이득을 추구하는 것도 특정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라 순수하게 나의 마음속에서 메아리치는 가치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다. 진보도 보수도 나름의 명분은 있을 것이고 무엇이 선이고 진실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모호한 이 시대, 내 행동의 기준은 벌거벗은 순수에 기댄 나의 마음이었다. 마음이 시키는 행동을 했을 때 다소 손해를 보기도 했고 주위에서 욕을 먹었을 지라도 적어도 후회는 없었다. 나의 행동이 위선이 아니란 것은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나의 마음이 공정과 정의의 가치에 이반을 일으키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안다. 2019년 코미디 같은 정치가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젊은 기자들이 하고 있는 행동은 언론사주나 간부들이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순수한 마음이 시키는 행동이라는 것을. 적어도 이 시대 젊은이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과 주위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순수를 그들의 마음에 갖고 있기에 그들의 행동 또한 순수한 것이고, 그래서 대한민국 사회의 정의가 이만큼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 그들의 순수가 추악한 위선자들을 심판대에 세우고 있으니까 말이다.

결과는 끝까지 지켜봐야 겠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 한 자락의 희망을 발견해서 흐뭇하다. 내일이라도 나의 제자 언론인에게 전화해서 밥이라도 한 끼 사줘야 겠다.

2019. 9. 4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