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덫

패러프래이징(paraphrasing)에 훈련이 된 나로서는 웬만해서는 타인이 쓴 글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지는 않지만 짐 콜린스(James Collins)가 쓴 책 <Good to Great>의 소제목인 “기술의 덫(technology trap)”이라는 표현만큼은 그대로 내 블로그 제목으로 인용하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 다른 어떠한 표현도 그의 책 내용과 내가 공감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할 수가 없기에.

콜린스가 가진 질문은 이러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어떤 새로운 기술이 쓰나미처럼 덮쳐와서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의 기반을 무너뜨릴까봐 두려워 한다는데 주목한다. 그리고 그는 미국 전역의 훌륭한 기업을 일군 경영인들을 인터뷰 한다. 실제로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한 회사들의 경우 앞선 기술의 선도적인 구현을 성취한 점을 감안할 때 인터뷰에서 상당수의 경영인들이 기술 덕분에 회사가 성장했다고 진술하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결과는 보기좋게 예상을 빗나갔으니, 경영인들중 80%가 위대한 기업이 된 5가지 요인 중 하나로 기술을 언급조차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84명의 경영인들 중 기술을 1순위로 꼽은 사람은 단 2명 뿐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들이 기술을 무시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기술 외의 다른 중요한 요인들이 위대한 기업을 만드는데 더 큰 기여를 했다고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가령 관료주의의 철페, 회사의 철학과 비전, 적절한 인센티브의 제공, 노동 윤리와 적임자의 고용, 심지어 사풍 등을 언급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콜린스의 비유를 빌리자면, 자동차 경주에서 승리하는 요인은 차가 아니라 운전자와 그의 팀이라는 것이다. 즉, 차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부차적이라는 생각이다.

마찬가지로 쇠락한 회사들의 일차적인 원인을 기술 실패가 아니라 경영 실패에서 찾는다는데 주목한다. 비즈니스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최초의 기술 개척자가 해당분야의 선두를 유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최초의 PC용 스프레드시트 였던 비지칼크(VisiCalc)는 지금 온데간데 없고 엑셀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또한 오스본은 최초의 휴대용 컴퓨터를 만들었지만 현재는 델과 소니 같은 다른 회사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민간 제트기 개척자 드 아비양(De Havilland)이 보잉에게 항공기 산업의 지배자 자리를 빼았겼고, AC 전기 시스템의 선구자 역시 지금의 GE가 아니라 웨스팅 하우스 였다고 한다. 이처럼 존재감이 사라진 기업들 쇠락에서 볼 때 기술은 좋은 기업을 위대한 기업으로 만들수 없고, 실패를 차단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일본 굴지의 기업이었던 소니가 몰락한 것 역시 기술의 실패가 아니라 그들의 관료적 사일로(silo) 문화였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바 있다. 콜린스는 비단 비즈니스의 사례 뿐 아니라 베트남전을 한 예로 들기까지 한다. 기술적으로 더 정교하고 앞선 전투력을 보유한 미국이 소총을 갖고 대적한 베트남 게릴라 들에게 패전한 씻기 어려운 미국인들의 트라우마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실생활에서 느낀 바에 의하면 미국보다 한국의 기업인들과 지성인들이 더 기술지향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 기술 콤플렉스에 허덕이는 것만 같아 안쓰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우리의 경영인들이 기술을 우선순위에 두는 관점으로 인해 다른 중요한 요소들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기술의 덫”에 빠진 것은 아닌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2019.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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