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슈베르트

오늘은 시애틀에 비가 내린다고 했던 토요일이다. 날씨는 일기예보를 보란듯이 무시하고 화창하게 해를 비추니, 한치 앞 날씨를 정확히 모르기로는 한국의 기상청만 탓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 오는 핑계로 하루종일 집에 있겠다는 계획을 접고 바람을 쐴겸 집 근처로 잠시 외출을 했다. 가을의 해는 아무리 밝아도 역시 가을인지 쓸쓸함을 준다. 게다가 바람까지 불어서 낙엽 뭉치가 발 밑에 깔리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서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이 눈안에 들어왔다.

외출에서 돌아와서는 이내 슈베르트의 음악을 켰다. 작년 가을이던가, 시애틀 동쪽의 커클랜드 라는 곳을 차로 운전하며 가는데 길 나지막히 팽그르 날리던 가을 낙엽에 맞추어 흘러나오던 슈베르트의 Impromptu를 듣고 그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 적이 있었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무척 외롭다. 그래서 가을에 특히 잘 어울린다.

이렇게 맘 편히 감상적이 되어본지가 꽤 오래된 것 같다. 아직은 맘을 놓을 때가 아니라는 점, 멀리, 그리고 저 멀리 뛰어야 한다는 스스로의 채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익히 알지만 뜻밖의 가을 해를 선물받은 오늘은 슈베르트의 음악과 함께 운치를 맘껏 느껴보고 싶다.

운치라는 말을 꺼내니 내 와인독백의 에필로그가 생각나기도 한다. 아마도 한 껏 감상적이 었던 지난 시절이 바로 와인독백을 쓸 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지 이제 막 한달이 지났다. 첨부터 돈을 벌려고 책을 출간한 것은 아니라 판매량 같은 것은 관심도 없다. 책 프로모션하자는 출판사의 제안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난 그럼 왜 책을 썼을까. 글쎄, 독백을 한다고 했지만 나의 독백을 들어주는 대상을 내 마음속에 간직하며 따뜻한 위안을 받았던것 같다. 그래, 그걸로 충분하다.

쓸쓸한 가을 햇살, 낮게 뒹구르는 낙엽들, 슈베르트의 즉흥곡, 그리고 와인독백… 난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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