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수다가 아닌 대화를 위한 문화예술과 ICT 융합

우리가 지각하는 현실의 실체는 무엇인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인가. 대학 강단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친 지 어언 7년째에 접어들며 뉴스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그림에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안식의 시간 1년. 파리에서의 삶은 이 근원적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데 조금이나마 여유를 주었습니다. 사람을 보았고, 자연을 보았고, 그리고 무한한 미래의 여정을 꿈꾸었습니다. 아직은 완전한 답을 찾지는 못했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림의 대상은 보여지는 것이 아닌 보는 것, 느껴지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이라는 차이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능동적인 삶.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조심스레 옮겨놓기로 하였습니다. 비록 흰색의 평면이지만 캔버스는 진정한 자유로움을 선사합니다. 캔버스의 자유로움을 통해 인간의 오감이 입체적으로 교차하는 미래를 꿈꾸며 사람을 그리고 자연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자 합니다. 2013. 9. 18-23 제1회 김민하 개인전 <사람과 자연, 그리고…>에 앞서 쓴 초대의 글

나는 2013년도 9월에 화가로 데뷔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그로부터 두 해전인 2011년의 일이었고 2012년에 파리로 안식년을 가서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었다. 대단한 화가가 되려 했다기 보다는 그저 그림 그릴 때만큼은 마음이 평온해 져서 좋았고 머리를 쓰지 않고 그저 손 가는 데로 색깔과 도형이 창조되는 활동이 멋졌을 따름이었다. 인사동의 유명 미술관이 운 좋게 내 포트폴리오를 승인하였고 안식년을 다녀온 일년 뒤에 나는 드디어 화단에 데뷔하게 되었다. 사실 내 그림을 전시회를 통해 대중들에게 내놓을 때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문 화가들이 내 그림을 보았을 때 느낄 실망감이 앞서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도 사명감으로 덧입힌 내 특유의 배짱이 당시에도 나를 이끌었다. 나 같은 아마추어 화가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이 땅의 문화예술이 발전하지 않겠는가 하는 아전인수격의 사명감 말이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창작활동에 전념하는 예술인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아울러 전시를 하고 보니 그림을 대하는 일반인들의 태도 또한 빈번히 접할 수 있었다. 예술인들의 입장에서는 창조적 예술활동이 밥벌이가 안 된다는데 애석함을 느끼곤 했다. 교수를 그만두기 전 사람들이 화가로 직업을 전향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나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즐겁지만 그것이 업이 된다면 계속 즐거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나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 놓았다. 그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문제가 눈앞에 다가왔을 때 내 그림의 경향이 대중추수적으로 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예술가로서의 원칙을 지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특히나 우리 사회는 창작 예술가들을 위한 사회적 인식과 재정적 인프라가 공고히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직업 예술가로서의 전망을 갖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예술, 특히 그림이라는 장르가 너무나도 어렵게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내 전시를 보러 온 지인들 중 대다수가 자신의 그림에 대한 무지를 토로하며 훌륭한 그림을 몰라볼까 두렵다는 격려 차원의 자성을 하였다. 혹자는 내게 그림에 가깝게 다가가는 방법을 묻기도 하였다. 일반인들 모두가 즐겁고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도록 내어놓은 창작물이 너무나 지적으로 어렵게 다가간다는 사실에서 나는 창작예술가들과 관객들의 소통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는 하였다.

2015년 4월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에서 위원장을 공모하였다. 마침 교수직을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한 이후였고 새로운 삶을 계획하던 차에 나의 문화예술에 대한 비전을 실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 싶어서 위원장 직에 지원하였다. 지원서에는 직무수행계획서 라는 것을 제출하게 되어 있었고 나는 4대 비전 11대 전략이라는 문화예술위원회의 밑그림을 그려서 4월 15일에 제출하였다. 4대 비전은 정보기술과 문화예술 융합, 문화예술 국제교류 촉진, 국민 문화예술 인식 진흥, 지역 문화예술 특성화 등을 포함했다. 나름 혁신적 전략을 많이 고민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지없이 서류 통과 조차 못하는 결과를 경험했다. 문화예술 위원회에서 추진하기에는 너무나 큰 전략이었나 싶기도 했고 나의 연령이 위원장이 되기에는 너무 젊었나 생각하기도 했다. 설사 그렇다 한들 서류가 통과되지 않았다는 것은 나의 사업비전이 쓸모가 없다는 것인데 그 몇 달 뒤 청와대와 정부에서 국가 문화융성을 주창하며 문화예술과 IT의 융합을 부르짖는 데 대하여 나는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내가 제안한 정보기술(IT)과 문화예술의 융합이라는 비전에는 4가지 방향의 전략사업이 담겨져 있었다. 첫 번째는 모바일 관객 사업이다. 여기서 모바일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휴대폰을 뜻하는 이동식 단말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움직이는’ 관객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모바일 폰의 급속한 보편화에 따라 다수의 국민들이 문화예술 작품을 모바일로 감상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귀에 이어폰을 꼽고 음악이나 영화 등을 즐긴다. 앞으로 스마트 카 기술이 발전되어 무인주행 시스템이 완비되면 승용차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모바일 관객 층으로 흡수될 것이 분명했다. 문화예술의 접근성을 높이고 예술가들 입장에서 관객 동원 효과를 증진하기 위해서도 모바일 관객 사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 방향의 전략 사업은 가상 공간 사업이다. 예술 창작자들이 필요로 하는 퍼포먼스나 전시 공간의 온라인화를 추진하는 사업을 말한다. 이는 모바일 관객 사업과 연계하여 예술작품 수요 공급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세 번째의 사업은 관객참여 공연 인프라 구축에 관한 내용이다. 오프라인 예술 공간에 얼굴이나 홍체, 혹은 동작 인식 센서를 부착하여 관객들의 반응이 피드백 되게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항상 관객들의 솔직한 반응을 갈구하던 나를 돌아보며 이 사업은 협력적 문화 콘텐츠 생산의 모델을 구축할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네 번째 사업은 바로 창작자-관객 네트워킹에 관한 것이다. 이 사업만큼은 내가 이미 2010년도에 발표했던 소셜콘텐츠론의 연장선상에 있기에 반드시 나의 손으로 가장 먼저 사업화하고 싶은 아이디어이다.

내가 현재 개발하고 있는 대화형 문화예술 관람 SNS에는 다국어 번역 시스템도 장착을 할 계획이다. 나는 모바일 폰에 장착된 다국어 번역 시스템이 그리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유로 대화자들 사이에 공유하는 관심사가 없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사실 수많은 메시지 기반 SNS가 그리 글로벌화되지 못하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언어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 나도 동의하지만 설사 다국어 번역 시스템의 개발로 언어의 문제가 해결된다 한들 국경 없는 친교가 조성되기 힘든 이유로 나는 공유하는 관심사의 부재, 혹은 공통된 목적의 부재라고 본다. 수 십 년간 친분을 유지해온 사이에서도 목적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생소할 때가 있는데 생전 얼굴도 못보고 언어도 다른 외국인들과 활발한 대화를 나눌 목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경을 초월하여 향유되는 문화예술이라면 이 같은 목적지향적인 글로벌 대화를 가능하게 하리라 생각한다. 아울러 기술적으로 볼 때 이처럼 목적과 공간에 최적화 된 SNS는 비단 예술작품을 향유하는 데에서 나아가 판매하고 유통하는 전자상거래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많은 개발자들이 소비자들의 SNS 이용동기를 관계의 확장에 두고 있다. 그래서 팔로우어의 숫자와 친구의 숫자 등이 관계망의 중요한 지표가 되고는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애용하고 있는 SNS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수박 겉핥기 식의 표면적 관계형성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찌 보면 소비자들은 단순한 수다를 원한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대화를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지금의 SNS가 깊이 있는 대화를 촉진하는 데 과연 얼마만큼 기여했던가를 생각해 볼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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