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내 인생의 굴레, 인문학

지금은 이용자 편의를 한층 높인 스마트 기반 컴퓨터들이 대세이지만 대학을 다닐 때 즈음 막 초창기 PC를 접했던 나는 컴맹에 속했다. 대학 때 과학도 공학도 전공하지 않았기에 더군다나 돈벌이 안되고 가난한 학문이라는 인문학도 이었기에 아무도 내가 기계치라는 사실에 의문을 달지 않았고 비난도 하지 않았다. 다만 기계와 소통이 안 되는 때에 불편함을 경험했을 뿐이다. 불편함은 내가 감수해내면 그만이지만 정말 안타까운 점은 내가 아무리 미래가 어떻고 과학이 어떻고 하며 떠든다 한들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컴퓨터도 모르는 기계치 인문학도 출신이 무슨 과학을 논하는가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미래에 관해 계속 떠들고 싶다. 나의 <미래독백> 시리즈 집필이 끝나는 시점에 내린 결론에 대해서도 과연 사람들이 냉소적일까 하는 특유의 승부근성이 가물거리며 피어 오르기도 하거니와 나름 내가 부여한 사명감을 실현하기 위해 마구 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명감. 나는 지금도 후회로 점철된 내 과거를 돌아볼 때 유일하게 잘했다고 생각되는 점이 인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이다. 한 때는 내 커리어 쌓기에 큰 난관이 되기도 했다. 특히나 학문적 순혈주의를 강조하는 대한민국의 학계에서 언론학자였던 나는 나의 학부 전공이 언론학이 아니라 미술사학이라는 사실만으로 알게 모르게 배척을 당했다. 일단은 촘촘한 인맥의 파워를 전혀 누릴 수 없었다. 능력과 성과로 평가되기 보다는 어느 대학 언론학과 출신이더라 라는 식의 인맥으로 얽혀있는 이 나라 학계에서 나는 홀로서기에 전력을 다해야 했다. 게다가 미술사학이라는 학문의 특이함이 또한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미래의 비전이 없고 인기도 없다는 인문학 중에서도 유난히 특이한 학문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대학 때부터 나는 전공이 뭐냐는 질문에 답을 하면 미대 출신이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기도 했다. 특히나 언론학자로서 커리어를 쌓는데 장애가 된 이유는 우리 사회 특유의 예술에 대한 천시 풍조가 한 몫을 했다고 본다. 환쟁이 학문 공부한 사람이 무슨 언론을 논하는가 하는 식의, 지금 내가 보기에는 한없이 무식하고 저열한 대우를 받아내야 했다. 이처럼 어렵게 학계를 버텨오면서도 나는 한번도 내가 공부했던 대학시절에 대해 후회를 하지 않았다. 쿰쿰한 책 냄새 속에서 베어 나오던 인간과 문학과 역사와 철학과 자유와 평등과 행복과 미래에 대한 선조들의 논의가 내게는 그저 낭만이었다. 강의실과 인문대 교정에서 우리 사회의 평화와 발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그 낭만의 시절은 나의 인격과 소양의 뿌리를 깊이 내리게 하여 이후 사회에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고난의 시기에 그래도 반듯한 판단을 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 낭만의 시절이 한없이 그립고 고마운 것이 지금의 내 심정이다.

이처럼 한없이 천대받던 인문학이 요즘 조금 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부 IT 리더들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바람에 창의적 리더십을 위한 소양으로 지위가 격상된 것 같다. 다행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인문학은 여전히 교양을 쌓는 학문 정도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기업 대표들이나 IT 기술자들이 가끔씩 봐야 하는 책 한 두 권 정도를 채우는 내용으로 인식되는 것이 현재의 인문학의 여전한 지위다. 사실 그나마 고마워해야 할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는 과학기술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우선 주목해야 할 변화는 과학기술이 창조하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기계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흔히들 하드웨어라고 일컬어지는, 공학적 공법만 갖추었다면 충분히 생산 가능한 기계가 우리 사회의 수요를 창출하기 에는 세계가 너무나 앞서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 의, 식, 주를 해결하는데 집중되었던 인간 사회가 지금은 매우 다양한 지점에서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 단순히 의식주를 소유하느냐 마느냐의 차원이 아니라 어떻게 누리고 사는가에 사회적 관심과 요구가 발생하다 보니 단순히 하드웨어적 상품을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비즈니스의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교육과 문화와 여가 등 서비스업 중심으로 사회적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 분야에 접목된 과학기술의 역할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요사이 IT 기업들은 한결같이 소프트웨어에 집중하고 있고 사회는 융합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가령 무엇을 생산하던지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야 할진대 사람들의 니즈와 요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에 관한 학문, 즉 인문학에 뿌리를 둔 통찰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바람직한 IT 리더상으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IT 리더는 말 그대로 인간 사회에 보다 나은 삶의 방식을 산출하기 위하여 IT를 이용하는 비즈니스 영역의 리더를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가진 IT 리더에 관한 스테레오 타입은 공학도 출신의 과학기술자이고 많은 IT 기업들의 대표가 엔지니어 출신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입관은 IT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이 무엇이고 리더십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이 부재한 결과이다. 지식은 단기간 내 연마가 가능하다. 인문학 서적 한 두 권, 컴퓨터 언어 및 프로그래밍 서적 한 두 권으로 축적할 수 있는 것이 지식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이렇게 지식의 연마를 통해 배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능력은 지식의 측면과 인성의 측면이 있다고 본다. 나는 제대로 된 IT 리더들은 인성의 측면이 지식을 압도한다고 단언한다. 가령 내가 가진 과학도들의 이미지는 마니아이다. 조립식 장난감에 심취하여 로봇의 탄생을 꿈꾸던 아이들이나 나무 넝쿨 밑이나 습한 냄새 가득한 지하실 어딘가 혼자만의 실험실을 가지고 있던 꼬마 과학자들이 나에게는 과학기술자의 소양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성장하여 과학기술적 지식을 연마했기에 과학자로 보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들의 마음 한 가운데에는 과학기술자로서 이 세상의 진보에 기여하겠다는 뜨거운 열정이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과학자로 본다. 무언가에 미치고 마는 마니아적 열정 말이다. 인간의 편안하고 조화로운 삶을 위해 자신의 열정을 바치겠다는 인성을 가진 과학도들에게 굳이 인문학적 지식을 쌓으라고 요구하고 싶지는 않다. 인문학도들 역시 마찬가지다.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통해 내려져 온 인간의 본성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사람들 중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가진 진정한 인문학도라면 비록 기능적인 면에서의 지식은 얕을지라도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비전과 미래에 대한 선구안을 능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즉, 요점은 전공 학문의 영역이 IT 리더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이 뿌리내린 인성에 바탕을 둔 열정이 이 사회의 진보에 기여하는 IT 리더를 탄생시키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전공학문에 연연해 한다면 소위 말해 가방 끈 짧다는 직업 고등학교 출신 혹은 불우한 환경으로 대학을 진학하지 못한 이들은 평생 IT 관련 창업을 꿈도 꿀 수 없게 된다. 마치 발효식품과 같이 장기간의 숙성이 필요한 것이 인성일진대 인문학적 리더십과 과학자적 소양을 단기간 내에 연마할 수 있는 지식으로 접근하면 이들이 오랫동안 스스로 배양해온 열정과 소양을 인정받을 길이 없어지고 만다. 무엇인가에 미쳐서 뛰어난 집중력과 추진력을 발휘하는 능력, 즉 열정은 단지 종잇장에 불과한 학위증서나 책 몇 권, 강의 몇 번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서부터 다양한 기회가 주어지고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무엇인지를 일찍 계발하는 서구사회와는 달리 입시 교육 위주의 우리 사회는 스스로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좁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겪는 시행착오의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 역시 입시 교육 중심의 중, 고교 커리큘럼으로 인해 정작 제쳐두었던 나 자신과 인간과 사회와 세상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던 인문학도로서의 삶을 통해 그나마 사그러들 수 있었던 열정의 불씨를 발견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인문학은 절대 교양이 아니다. 과학자들이 덤으로 갖춰야 할 지식도 소양도 아니다. 아마도 IT 리더들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인문학 자체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통찰력을 말하는 것일 거다. 우리 사회를 보다 인간 중심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한국일보 기고/5월 29일] 창의적 리더십, 메타인지 계발에서부터

기사입력 2010-05-28 13:57 | 최종수정 2010-05-28 21:42

자유 토론에 익숙지 않은 동양권 학생들이 영미 국가에 유학 가서 느끼는 상실감은 실로 엄청나다. 물론 언어적 한계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데 실패하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창의적 리더십의 부재다. 자신만의 독창성을 발휘하는 창의적 사고, 자신감 있는 의견 표현, 타인을 설득시키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기술 등은 주입식, 암기식 교육으로는 배양되기 힘든 능력이다. 게다가 위계적인 문화를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 기존 이론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오고가는 영미식 교육의 장에서 어느덧 이방인으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

리더십 발현에 소극적인 학생들을 바라보며 교육자로서 인재양성을 고민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학습능력과 창의적 사고의 적절한 균형이다. 잠재된 창의력을 십분 이끌어내고 효과적인 학습능력으로 이를 견인함으로써 사회적 효용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지름길, 즉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가장 시급한 전략은 메타인지(metacognition)의 계발이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통합적 인식을 바탕으로 최적의 문제해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지식, 동기, 정서, 경험 등 자신이 가진 인지 기능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메타인지라고 한다. 메타인지의 발달은 창의적 사고의 발현과 이를 정교하게 다듬는 학습동기를 함께 유발하고, 내재된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논리력으로 집단의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리더십, 즉 창의적 리더십의 인큐베이터가 된다고 하겠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메타인지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길러진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창의력의 발현이 가장 중요하게 간주된 분야는 과학기술 분야다. 그러나 오늘날 정보통신 기술의 혁명을 이끈 과학자들이 한결같이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의력을 주창하는 이유는 바로 그간의 과학기술 발전이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기술’이었다는 점을 공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발명은 단순히 기술의 혁신이 아니라 인류 커뮤니케이션의 혁신이었고,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대표되는 ‘애플’발 모바일 혁명 역시 시공간을 초월하는 휴먼네트워크를 가능하게 한 인문학적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인문학적 소양을 함양하는 것과 함께 메타인지를 계발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은 귀납적 진리추구 방식이다. 대부분의 주입식, 암기식 교육은 먼저 검증된 이론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찾아서 그 이론의 적합성을 강화해 나가는 연역적 방식을 취한다. 반면 귀납적 방식의 교육은 다양한 사례와 경험을 공유하면서 이론적 틀을 완성해 나가는 보다 열린 의사소통 구조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위계적인 연역적 진리 추구방식에 비해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역동적인 논의의 장을 형성하기가 수월해 진다. 아무런 정답이 제시되지 않았기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자유롭게 오고가고, 적절한 조율이 이루어진다면 현실 적합성 측면에서 완성도가 훨씬 높은 이론을 수립하는 최적의 조건을 만든다고 볼 수 있다.
메타인지 계발을 통한 창의적 리더십 구현은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관성적 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지금의 시대는 절대적 진리에 복속하는 암기형 리더가 아니라 개방적 의사소통 구조를 통해 부패한 관행을 끊고 미래지향적 조직 문화를 이끄는 창의적 리더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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